메데진의 도시 대전환을 실무에서 밀어붙인 주체는 하나의 공기업, EDU였다. 도서관공원과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강을 도시로 되돌린 리버파크가 모두 이 회사의 손을 거쳤다. 강변을 걷고 EDU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확인한 것은, 좋은 계획보다 그것을 끝까지 실행하는 조직이 도시를 바꾼다는 사실이었다.
강 위를 걷다 — Parques del Río Medellín
답사 첫 일정은 메데진강 변에 조성된 선형공원 Parques del Río Medellín이었다. 도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메데진강은 오랫동안 강변 간선도로(Autopista/Avenida Regional)에 의해 도심과 단절돼 있었다. 시민에게 강은 접근할 수 없는 배후지였고, 자동차만이 강을 따라 흘렀다. 리버파크는 바로 그 단절을 뒤집는 프로젝트다. 강변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을 지하화·복개하고 그 상부에 공원을 얹어, 도시와 강을 다시 잇는 것이 핵심 발상이다.
리버파크의 데크 산책로. 복개한 강변도로 상부에 녹지와 보행로가 이어진다 (Parques del Río Medellín,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15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현장에서 확인한 공원은 강 양안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보행 플라자와 녹지, 화단, 그리고 데크 산책로로 구성돼 있었다. 발밑으로는 자동차가 지나고, 그 위를 사람이 걷는다. 강물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웠고, 물길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벤치, 수경 시설이 배치돼 있었다. 도시 인프라의 층위를 재편해 지상을 시민에게 돌려준 설계가 인상적이었다.
복개 데크 아래로 드러난 메데진강 본류와 배후 산지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22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강 양안을 따라 이어지는 보행로와 녹지, 멀리 안데스 산자락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23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 리버파크 데크 산책로와 강변 풍경 (현장 영상)
가비리아 시장의 기함사업, 그리고 EDU의 손
리버파크는 아니발 가비리아(Aníbal Gaviria) 시장(2012~2015)의 기함사업으로 추진됐다. 국제 공모를 거쳐 라티투드(Latitud Taller de Arquitectura y Ciudad)가 설계를 맡았고, 착공은 2015년(서안), 도심 서안 Conquistadores 인근의 1단계(1A) 구간이 2016년 준공됐다. 발주와 집행은 뒤에서 다룰 도시개발공사 EDU가 담당했다.
초기 구상은 대단히 야심찼다. 공개된 계획안 계열 자료에 따르면 공공공간 총 약 17km를 8단계로 분할 시공하고, 자전거도로 약 32km, 녹지 약 180ha, 식재 약 10만 그루를 조성한다는 목표가 제시됐다. 다만 이들 수치는 초기 구상치이며 실제 실현된 범위는 일부 구간에 그친다. 총사업비 역시 명시적 확정치를 특정하기 어려워 여기서는 판단을 보류한다.
강 건너 도심부 건축물과 녹지가 어우러진 리버파크 전경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22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수경 시설과 배후 고층 주거단지 — 강과 도시의 재연결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19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리버파크의 'Medellín — Aquí todo florece(이곳에선 모든 것이 꽃핀다)' 조형 사인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1:25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강변 보행 플라자와 도시 재생 현장 (현장 영상)
EDU — 도시를 실행하는 공기업
오후에는 리버파크를 발주·집행한 주체, 메데진 도시개발공사 EDU(Empresa de Desarrollo Urbano de Medellín)를 방문했다. EDU는 도시개발의 기획·설계·실행·자문을 아우르는 메데진 시 산하 공기업이다. 도서관공원과 학교, 공공주택을 직접 설계하고 발주하며 시공까지 이끄는 실행 주체로, 시의 도시관리 프로그램을 집행하는 핵심 기구다.
EDU 한눈에 보기
EDU는 2002년 2월 시령(Decreto 158)으로 재편돼 출범했다. 전신은 시 상공기업 계열로, 1996년 'Promotora Inmobiliaria de Medellín'으로 정비된 뒤 2002년 지금의 EDU로 개편됐다. 법적으로는 메데진 시가 소유·종속하는 분권(descentralizada) 공기업으로, 행정·재정 자율성을 갖는다. 이른바 상공형 공기업(EICE)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이나, 문구상의 직접 확증은 조심스럽게 남겨둔다.
2002
EDU 설립(시령 재편)
시 소유
분권 공기업
기획→시공
직접 실행 주체
설립 시점에는 이설이 있다. 사전 정보에서 언급된 '1993년 설립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 가능한 법령상 기점은 1996년(정비)과 2002년(EDU 개편)이다. 본문에서는 2002년을 설립 기점으로 삼되, 이 완충을 밝혀둔다.
Urbanismo Social — 사회적 도시계획의 집행자
EDU의 존재 의의는 사회적 도시계획(Urbanismo Social)과 떼어 설명할 수 없다. 세르히오 파하르도(Sergio Fajardo) 시장기(2003~2007)에 EDU는 이 철학을 현장에서 실현하는 핵심 집행 기구가 됐고, 알론소 살라사르(Alonso Salazar) 시장기(2008~2011)에도 그 흐름이 이어졌다. 건축가 알레한드로 에체베리(Alejandro Echeverri)가 EDU 초대 디렉터로서 이 개념을 실무 언어로 정식화했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과 가장 좋은 공공공간을,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동네에 짓는다 — 사회적 도시계획의 핵심 명제.
그 대표적 실행 도구가 통합도시프로젝트 PUI(Proyecto Urbano Integral)다. 대표 사례인 북동부 PUI(PUI Nororiental)는 2004년 착수돼, 메트로케이블(MetroCable) 신설을 계기로 비공식 정착지 세 곳을 교통망에 연결하고 교육·문화·보건·안전 시설을 통합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통, 공공시설, 주거환경 개선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소외 지역에 집중 투입한 이 접근을 EDU가 집행했다.
EDU가 남긴 대표작들
EDU의 실행력은 몇 개의 상징적 프로젝트로 압축된다.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세계의 주목을 끈 작업들이 모두 이 공기업의 손을 거쳤다.
에스파냐 도서관공원 (Parque Biblioteca España)
Comuna 1의 Santo Domingo Savio 언덕에 들어선 도서관공원. 건축가 잔카를로 마잔티(Giancarlo Mazzanti)가 설계한 세 개의 검은 돌 형상 건물로, 2007년 3월 스페인 국왕 임석하에 개관했다. 스페인 국제개발협력청(AECID) 지원을 받아 이름에 'España'가 붙었고, 2008년 이베로아메리카 건축비엔날레(BIAU) 최우수작에 올랐다. 이후 부실시공 논란으로 2015년 폐쇄·해체 과정을 거쳐 보수 후 재개관했다.
코무나 13 옥외 에스컬레이터 (Comuna 13)
콜롬비아 최초의 옥외 공공 에스컬레이터. 급경사 비탈에 놓인 384m·6구간 시설로, 약 350개 계단을 대신해 약 6분 만에 언덕을 오른다. 약 1.2만 명이 편익을 누렸으며, 2011년 초 착공해 그해 말 준공됐다. EDU가 집행했고, 4년 넘는 주민 동반 과정이 병행됐다.
리버파크 (Parques del Río Medellín)
이날 오전 걸었던 강변 선형공원. 강 양안을 잇는 통합 공공공간으로, 강변 고속도로를 복개해 도시와 강을 재연결했다. 발주와 집행을 EDU가 맡았다.
리버파크의 금속 데크 보행교 — EDU가 집행한 강변 공공공간의 디테일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2:31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넓은 보행 플라자와 시민의 산책 — 강을 되찾은 도시의 일상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2:23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 리버파크 녹지와 데크 구조 (현장 영상)
EDU 지식공유 세션 — 서울과 메데진의 대화
EDU 사무실에서 진행된 지식공유 세션은 이번 답사의 정점이었다. 회의실에는 EDU 실무진과 서울 측 조사단이 마주 앉았고, 원격 참여자가 화상으로 함께했다. 발표는 'Strategic model of urban renewal(도시재생의 전략 모델)'을 주제로, EDU가 도시재생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체계화하고 단계적으로 집행하는지를 다뤘다.
EDU 사무실 옥상에서 바라본 메데진 원도심 전경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3:52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EDU 회의실 지식공유 세션 — 현장 참석과 화상 참여가 함께 진행됐다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4:22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발표 자료 'Strategic model of urban renewal(도시재생의 전략 모델)'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5:28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논의는 자연스럽게 서울과 메데진의 비교로 흘렀다. 급경사 지형과 비공식 정착지, 교통 소외 지역이라는 메데진의 조건은 서울의 저층 주거지·경사지 재생 과제와 겹치는 지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계획을 세우는 조직과 실행하는 조직이 EDU 하나로 통합돼 있다는 점이었다. 설계에서 시공, 주민 협의까지를 한 몸으로 끌고 가는 구조가 메데진 대전환의 추진력이었다.
세션을 마치고 EDU 실무진과 함께한 기념촬영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7:11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EDU 사무실 메데진 지도 앞에서의 단체 기념촬영 (2024.7.8 촬영) · 촬영 2024.07.08 17:15 · 콜롬비아 메데진·보고타 출장
▶ EDU 옥상에서 조망한 메데진 도심 (현장 영상)
💡 서울에 주는 시사점
💡 서울에 주는 시사점
공공 디벨로퍼의 실행력. 메데진 대전환의 핵심은 화려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기획부터 설계·발주·시공·주민협의까지 한 조직이 끝까지 책임지는 EDU라는 실행 주체였다. 서울도 계획과 집행이 분산된 구조를 넘어, 도시재생을 실질적으로 완결하는 공공 디벨로퍼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도시계획. '가장 좋은 공공공간을 가장 소외된 곳에' 두는 Urbanismo Social의 원칙은 형평의 관점에서 재생 우선순위를 뒤집는다. 서울의 저층 주거지·경사지 재생에도 물리적 정비를 넘어 교육·문화·보건을 통합 투입하는 PUI형 접근이 유효하다.
강·도시의 재연결. 강변 고속도로를 복개해 도시를 강으로 되돌린 리버파크는, 자동차에 내준 도시 인프라를 시민에게 되찾아주는 전략의 실물이다. 서울의 하천·간선도로변 재편에도 지상을 보행과 녹지로 되돌리는 층위 재편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출처 · EDU(Empresa de Desarrollo Urbano de Medellín) 공식 자료 및 시령 Decreto 158(2002); Parques del Río Medellín 계획자료(Latitud Taller de Arquitectura y Ciudad 설계); Urbanismo Social·PUI Nororiental 관련 문헌; 영·스 Wikipedia, El Colombiano·El Tiempo, LKY World City Prize. 설립연도(2002)·EICE 문구·Moravia EDU 집행 여부·Parques del Río 총연장/사업비 등 일부 수치는 초기 구상치 또는 미확증 사항으로 완충해 서술함. 사진: 2024.7.8 현장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