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대학교 기조강연 세 편 — 녹음 기록으로 재구성한 전문
WPSC 2026 셋째 날 본회의는 헬싱키대학교 대강당에서 세 편의 기조강연으로 채워졌다. 중국의 도시계획, 디지털 전환 패널, 그리고 계획의 새로운 지정학이 그것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녹음한 음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2026년 7월 1일 수요일 아침, 세계도시계획대학총회(WPSC) 셋째 날 본회의는 알토대학교 오타니에미 캠퍼스를 벗어나 원로원광장(Senate Square)에 자리한 헬싱키대학교 본관의 신고전주의 양식 대강당에서 열렸다. 총회의 주제인 주변부의 시선: 계획을 다시 생각하다(Peripheral Visions: Rethinking Planning) 아래, 세 편의 기조강연이 이어졌다. 중국 도시계획 3천 년의 파노라마, 디지털·지속가능성 전환을 다룬 패널, 그리고 계획의 새로운 지정학에 대한 진단이었다.
이 글은 앞서 나온 요약보다 더 깊이 있게 세 강연을 재구성한 것이며, 필자가 현장에서 녹음한 음성을 음성인식 소프트웨어(OpenAI Whisper, large-v3-turbo)로 전사해 작성했다. 녹음이 크고 울림이 있는 강당에서 억양이 섞인 영어를 담고 있는 탓에 전사문에는 오류가 섞여 있으며, 아래 서술은 충실하게 의역하되 녹음이 명확히 들리는 부분에 한해서만 직접 인용했다.
① 3천 년, 하나의 논지 — 중국의 도시계획(류젠, LIU Jian, 칭화대)
류젠은 제국시대 중국에서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이전 도시계획의 주된 역할은 기능적인 도시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 권력의 권위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과시하는 데 있었다. 도시 단위에서 이 논리는 베이징과 같은 수도의 배치에서 드러나는데, 그 형태는 그가 중국어로 풍수(風水) 이론이라 부른 우주론적·의례적 질서를 따라 산과 강에 도시의 형상을 연결시켰다. 그는 강 인근에 자리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베이징 자체를 예로 들었고, 마찬가지로 구릉과 수로로 둘러싸인 이름을 밝히지 않은 중국 남부의 한 도시를 두 번째 사례로 들었다. 이런 배치는 겨울 바람을 막고 여름 강우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물과 교통을 위해 강에 충분히 가까이 있으면서도 홍수를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중국 전통 도시계획의 규칙과 수준은 주로 황제 권력의 권위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고 과시하며, 그 힘이 미치는 범위를 넓히는 데 있었다.
이 동일한 논리는 건축의 스케일까지 이어졌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건축 규범은 대문의 형식, 지붕의 형태, 건축 자재를 규정함으로써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를 시각적으로 부호화했다. 황금빛 지붕은 황실이나 귀족 가문을 나타내는 신호였던 반면, 평민은 소박한 방과 검소한 대문에 머물렀다고 그는 언급했다. 사회의 위계 구조가 건조환경 자체에 직접 새겨진 것이다. 류젠은 수도, 지역 도시, 변경이나 소수민족 소도시의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한 이러한 황제 코드형 도시계획 체계가 19세기 중반 중국이 근대화와 조우하기 전까지 거의 3천 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조우는 전쟁과 식민화를 통해 찾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해안과 양쯔강을 따라 형성된 조약항과 외국 조계지 — 독일 관할하의 칭다오, 상하이의 공공조계 등을 예로 들었다 — 는 근대 서구의 계획 개념과 제도가 중국에 이식되는 통로가 되었다. 류젠은 중국의 기업가이자 개혁가였던 장젠(張謇)이 상하이 북쪽 도시 난퉁(南通)에서 이러한 수입 개념을 초기 토착 근대 계획으로 번역해낸 공로를 언급하며, 이를 외국인 행정가가 아니라 중국인 스스로가 수행하는 전문 실무로서의 도시계획이 시작된 지점으로 짚었다.
서사는 이어 1950년대로 넘어간다. 중국이 소련의 영향 아래 계획경제를 채택한 시기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156개 주요 산업 프로젝트가 전국적으로 입지가 정해져 약 70개 도시와 소도시에 분산 배치되었고, 이는 도시개발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류젠은 중국 서부 란저우(蘭州)를 예로 들었다. 이곳에서는 황허를 따라 산업 구역이 배치되고 그 주변에 주거지가 조성되면서 전통 도시가 주요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는 또한 이 도시 조직의 기본 세포로서 사회주의 '단위(單位)', 즉 주거와 생산을 결합한 공동체가 주택, 일자리, 서비스를 함께 제공했던 방식을 설명했고, 이를 1960~80년대의 '삼선(三線)건설' 운동과 연결지었다. 이는 군사적 방어 목적으로 산업을 연해 지역에서 내륙으로 옮긴 캠페인으로, 내륙 신흥 산업도시들의 물결을 낳았다.
류젠은 개혁개방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고 주장했다. 도시화는 단순히 산업정책의 부산물에서 그 자체로 사회경제 발전을 이끄는 명시적 동력으로 바뀌었다. 그는 연 약 1퍼센트포인트씩 상승하는 지속적인 초고속 도시화 — 이는 주택, 일자리, 서비스를 찾는 이주민의 막대한 연간 유입으로 이어졌다 — 와 함께 전례 없는 규모의 건설과 도시투자를 언급했다. 이러한 성장은 2012년 무렵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2011년경에는 인구의 과반이 도시 거주자가 되었다. 그는 베이징 자체의 성장이 이 패턴을 어떻게 예시하는지 짚었다. 1990년대 초 도심 재개발에서 시작해 대도시권 외곽의 신도시와 위성지구 형성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산업·경제정책이 이끈 소도시와 신개발구의 광범위한 증식으로 이어졌다.
도시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류젠은 그 대가와,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조정과 질을 중심으로 최근 재정비되고 있는 중국 도시계획으로 논의를 옮겼다. 그는 2013년 베이징 스모그의 인상적인 사진으로 예시된 대기오염과, 동서 지역 간·도농 간 격차 확대, 급속한 도시 팽창에 동반된 주거의 사회적 분리를 지적했다. 그는 토지이용, 환경보호 등 부문별 계획이 제한적으로만 조율되던 분절적·부처 단위 계획 체계가 2019년 이후 통합적인 국토공간계획 체계로 통합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는 전국 단위 농지 '레드라인'과 산림, 하천, 습지 등 비건설 용지의 보전을 근간으로 도시개발, 농업 보호, 생태 보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는 또한 지역 조정을 위한 병행 노력도 언급했는데, 창장삼각주(양쯔강 삼각주)를 물과 자원을 둘러싼 상류-하류, 성(省) 간 이해관계 경쟁이 의도적인 협력 메커니즘을 요구하는 사례로 들었다.
마무리에서 류젠은 이 전환의 인구학적·인간적 차원으로 눈을 돌렸다.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은 화북과 서남 지역 농촌에 '유수아동'과 고령 인구를 남겼고, 최근에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 인구감소와 도시축소가 시작되는 한편 고령화 사회와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기후의 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일상적 스케일의 과제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커뮤니티 기반 재생 — 주민 커뮤니티 플래너 제도, 참여형 근린 워크숍, 15분 생활권 — 으로의 전환을 설명했고, 항저우, 선전, 베이징에서 진행 중인 유휴지 및 습지 재생 프로젝트를 함께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도입부 논지로 돌아가며 발표를 마쳤다. 제국시대든 사회주의 산업화 시기든 시장개혁 시기든, 중국 도시계획의 불변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하는 공적 역할이었으며, 그 미래는 중앙과 지방 정부 간 관계의 변화와, 자신의 생활환경에 관한 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 증대에 의해 계속 형성될 것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② 도시계획은 할 가치가 있는가 — 계획의 미래를 다시 정의하다(노이보넨 패널)
2026년 7월 1일 헬싱키대학교에서 열린 본회의 패널 '계획의 미래를 다시 정의하다: 디지털의 진전(Redefining the Future of Planning: Digital Advances)'은 데모스 헬싱키의 공동창립자인 알렉시 노이보넨(Aleksi Neuvonen)이 좌장을 맡았고, 단순한 패널리스트 소개가 아니라 하나의 틀 짓기 강연으로 문을 열었다. 노이보넨은 도시계획이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상상과 비전을 오늘의 행동으로 번역하는 실천이라고 주장했다. 지속가능성과 디지털 전환의 담론은 널리 공유되는 이미지로 유통되며 사람들과 조직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이 이미지들은 다시 지구적 기후·생물다양성 협약에서부터 국가·도시 단위 목표에 이르는 공식 목표들의 층위 안에 내포되어 있다. 이 목표들이 함께 도시계획이 작동하는 경계를 정의한다. 그는 미래 그 자체는 알 수 없으며, 계획가들이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지식으로 치장된, 그러나 유용하고 심지어 필수적인 미래의 허구라는 점을 신중하게 짚었다. 그는 도시계획이 이를 감추기보다는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이보넨은 이어 그가 '전환의 시대'라 부른 것의 핵심 긴장들을 제시했다. 탈탄소화를 향한 노력은 성장 중심 사고를 넘어섰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서조차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기술낙관주의를 재생산한다. 정의는 전환이 나아가야 할 기치로 거듭 소환되지만, 파괴적인 경제·정치적 힘들로 인해 정의는 측정 가능한 효과라기보다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다. 녹색성장은 약속되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생태적 부담의 완전한 지구적 탈동조화를 보여주는 증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도구는 초생산성의 엔진으로 팔리는 동시에, 노동시장과 소비자 행동에서 기술적 대체와 격변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제임스 브라이들(James Bridle)의 저서 '뉴 다크 에이지(New Dark Age)'를 인용하며 노이보넨은, 새로운 기술의 층위가 더해질 때마다 미래를 더 읽기 쉽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노이보넨은 백캐스팅(backcasting)을 하나의 작업방법으로 제안했다. 현재의 추세로부터 앞으로 예측해 나가는 대신, 계획가는 바람직한 미래들의 범위를 먼저 정의하고 그 미래들로부터 현재로 거슬러 올라가며 실현 가능한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제시했다. 이는 미래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장기적 전환 서사가 늘 두 걸음 앞서 있는 돌파구를 계속 약속함으로써 기다림 자체가 변화로 가는 다리가 아니라 지속되는 조건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가 제안한 교정책은 긍정적인 미래지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지배적이고 성찰되지 않은 서사를 그대로 연장할 때 발생하는 '미래없음'의 함정에 대해 정직해지는 것이다.
이어진 패널 토론은 이러한 주제들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밀고 나갔다. 아동 이동성과 일상적 디지털 도구를 연구하는 한 패널리스트는, 도시계획은 이미 데이터로 포화 상태이며 진짜 질문은 가용한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것에 부여되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페미니즘 이론에서 끌어온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e)'를 그 자체로 계획의 원칙으로 제안했다. 특정 데이터셋이 누구를 돌보고 있는지, 누구의 안전이나 이동성이 계산에 포함되는지는 겉보기에 중립적인 기술 시스템 안에 내장된 정치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앞선 기조강연에서 다룬 도시계획의 데이터와 AI에 대해 성찰한 두 번째 패널리스트는, 더 깊은 위험은 AI가 인간의 결정을 지배하는 자율적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워치, 알고리즘적 알림, 설계된 인터페이스와 같은 코드화된 시스템에 끊임없이 노출됨으로써 사람들 스스로가 점점 기계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도시계획이 여전히 진정한 인간 경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코드화되고 도구화된 삶의 방식을 고착시키게 될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세 번째 패널리스트는 기후행동을 둘러싼 경쟁하는 정치적 상상들을 검토했다. 생활양식과 문화적 변화에 의존하는 '넷제로' 프레이밍과, 탄소포집과 원자력을 중심으로 구축된 좀 더 프로메테우스적인 기술 주도 비전을 대비시켰다. 그는 두 접근 모두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할 때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상상의 다원성 자체보다 어떤 상상이든 진정한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함을 패널에 시사한다고 말했다. '도시계획은 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자신의 발언을 구성한 한 패널리스트는, 삶이 살 가치가 있는가라는 카뮈의 도입 질문이 지닌 실존적 어조를 되풀이하며, 도시계획이 그러한 회의를 견뎌내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을 내다보고, 세계를 성찰하며, 완전히는 알 수 없는 것을 예측하려 시도하는 것은 그저 인간 본성의 일부이며, 따라서 그의 말을 빌리면 인류는 계획하기를 멈출 수 없다.
도시계획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그것이 계획할 가치가 있는가이다. ... 나는 계획이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계속 계획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계획하는 본성, 세계와 미래에 대해 사고하는 지각 있는 존재로서의 본성 말이다.
세션은 신체성을 다시 상상과 연결짓는 마무리로 끝났다. 몸과 정치적 주체성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발언한 한 패널리스트는, 상상은 담론을 통해서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함께 행동하는 몸들의 살아 있는 집합적 수행성을 통해서도 변화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도시계획의 도구가 아무리 디지털화되더라도, 논의되고 있는 전환들이 결국은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고 다투어진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③ 움직이는 표적을 위한 계획 — 새로운 지오코텍스(바이으르바으, METU)
저는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함께 생각하고 함께 성찰해보자는 일종의 초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종종 이것은 일종의 집단 치료 세션이 될 것이다.
바이으르바으의 제목 '도시계획의 새로운 지오코텍스: 세계화 2.0, 긴급진단, 그리고 전환적 계획(The New Geo-Cortex of Planning: Globalization 2.0, Emergency Diagnostics and Transformational Planning)'은 그가 청중이 '지오(geo)'를 이중의 의미로 이해하기를 바랐음을 보여준다. 첫째는 국제관계의 익숙한 지정학적 의미이고, 둘째는 그의 논지에서 더 핵심적인 것으로, 공간적 현실 자체의 정치적 구성이다. 즉 공간은 도시계획의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정치적·제도적 과정을 통해 능동적으로 생산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도시계획의 개념적 뿌리에서 시작해, 도시계획이 왜 불가피하게 공간적인지, 현재 진행 중인 전환의 지정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화 2.0 시대 계획가의 죽음 — 혹은 어쩌면 재탄생 — 이라 부른 것에 이르는 여정을 제시했다.
기조강연의 첫 실질적 주장은 도시계획이 근본적으로 심리적·인지적 필요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지 않고는 기능할 수 없으며, 다가올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잠정적 통제 없이는 불안과 마비가 뒤따른다고 그는 주장했다. 도시계획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실행 가능한 전망으로, 그리고 때로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제안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전환시키는 규율이다. 인간의 인지 자체가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패턴화함으로써 작동하기 때문에 —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뇌는 세계를 다룰 수 있는 범주로 압축해야 하는 네트워크다 — 도시계획은 이 기본적인 인지적 작용의 전문적 확장이 된다. 즉 행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복잡성을 추상화하고 축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필요성에서 바이으르바으는 도시계획을 운영적·기술적 필요성으로 논의를 옮겼다. 운영적으로 도시계획은 근본적으로 문제해결, 의사결정,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러 행위자와 권한 층위에 걸친 정치적 조율에 관한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여러 개의 끈을 동시에 당기는 도구다. 기술적으로 도시계획은 계산, 측정, 재현의 방법에 의존한다. 계획가는 사실상 알고리즘 설계자로서, 실제 물리적 공간이 설계되기도 전에 공간적 사고를 확장 가능하고 시각화 가능하며 실행 가능한 형태로 번역한다. 이 세 가지 필요성 — 심리적, 운영적, 기술적 — 은 함께 도시계획이라는 활동이 그 대상과 도구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하는 와중에도 왜 지속되는지를 설명한다.
이어 그는 도시계획이 본질적으로 공간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를 구조적 차원에서 논했다. 계획을 준비하는 권한과 의사결정자들 자체가 지정학적이고 영토적인 실체이며, 정치적으로 구성되고 지리적으로 경계 지어져 있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 역시 마찬가지로 지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획가가 사용하는 공간적·개념적 범주는 시대를 초월하거나 중립적일 수 없으며, 진행 중인 실제 지리적·정치적 변화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핵심 진단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다. 오늘날의 변화들은 도시계획 개입의 대상을 점점 더 유동적으로 만들었다. 문제, 인구, 정보, 서비스는 더 이상 고전적 도시계획이 전제하는 고정된 행정관할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동한다. 고정된 관할 경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도시계획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다루어야 할 대상이 움직이는 표적이 될 때 사실상 무력화된다.
우리의 개입 대상은 움직이고 있다. 그것들은 공간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고정된 관할권과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 고정된 관할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움직이는 사람들, 움직이는 정보, 움직이는 서비스, 움직이는 문제들이다.
바이으르바으는 이것이 국민국가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라고 신중하게 밝혔다. 오히려 국민국가는 그가 거버넌스 매트릭스라 부른 것 속으로 재조직되고 흡수된다. 이는 촘촘한 다중스케일적 연결망으로, 중앙정부는 여전히 활동적이지만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 기구, 초국적 기업 네트워크, 그리고 점점 더 '세계화 2.0'의 조건을 설정하는 디지털 자본주의 인프라와 나란히 존재하는 수많은 노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이 매트릭스를 실제로 매일 운영하는 것은 대체로 비공식적 네트워크와 그가 네트워크 관리자 또는 네트워크 행정가라 부른 개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권력은 공식적 관할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숨겨져 있고 종종 의도적으로 불투명한 네트워크 안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데서 나온다.
토론 시간에 이 매트릭스 안에서 누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민주화할 수 있는지 질문받자, 바이으르바으는 이 기조강연에서 가장 예리한 정식화 중 하나를 제시했다. 어떤 행위자가 네트워크 안에서 더 중심적이 될수록 다른 정부와 기구들은 그 행위자에 더 의존하게 되며, 이는 분산된 권위보다는 강권통치와 1인 통치를 조장하는 역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네트워크가 스스로 민주화되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계획가들이 이러한 매트릭스가 형성되는 방식에 발언권을 가지려 한다면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 내부에서 그것을 재형성할 수 있을 만큼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외부적 호소만으로는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화된 집단적 행위주체성에 대한 동일한 요구를 청중에게 돌리며 강연을 마쳤다. 고정된 관할권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제 움직이는 표적에 직면한 이 학문 분야와의 대면은, 결국 그가 처음에 약속했던 집단 치료 훈련이었음을 재차 강조했다.
네트워크 행정가가 네트워크의 중심을 확장하려 할수록 다른 이들은 그 행정가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강한 지도자'의 세계인 이유다. 이 네트워크는 스스로 민주화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것을 재형성하고 싶다면 매우 잘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세 기조강연이 서울에 남기는 것
연달아 들으니 세 기조강연은 서로 운을 맞추듯 겹쳐졌다. 류젠은 도시계획을 매 정치·경제 시대마다 함께 진화하며 언제나 공공의 이익 속에서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하는' 임무를 맡아온 것으로 읽어냈다. 노이보넨 패널은 디지털·녹색 전환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가치와 정의에 의해 조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이으르바으는 고정된 행정관할이 더 이상 움직이는 표적이 된 문제들을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제 통치를 좌우하는 네트워크에 들어가 이를 재형성할 수 있을 만큼 조직화된 계획가를 요청했다.
서울에 있어 이 맥락은 곧바로 이어진다. 서울시가 도시계획 정보시스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데이터·AI 기반 계획지원을 구축해가는 지금, 문제는 효율성만이 아니라 형평성, 숙의, 인간의 판단을 그 설계 안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더 이상 가만히 머물지 않는 인구, 서비스, 위험을 어떻게 경계를 넘어 계획할 것인가에 있다. 세 기조강연은 이 질문을 도시계획이라는 학문 전체에 되돌려 놓았다. 도시계획이 여전히 정의롭고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글은 시리즈의 요약②와 상세 스트리밍 기록을 보완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현장 녹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강당에서 실제로 전달된 논지 자체에 초점을 두었다.